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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원전과 탈핵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전기 남아도는데 “원전 더 필요하다”는 정부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전기 남아도는데 “원전 더 필요하다”는 정부

 

경향신문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 “전력 충분하다” 지적에도 2035년까지 11기 추가
과소비 부르는 싼 전기료, 발전소 공급과잉 초래

충남 지역의 한 민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는 올 들어 가동률이 5%대로 떨어졌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1년 중 전기를 생산하는 날이 20일에 그치게 된다. 2008년 완공된 이 발전소는 가동률이 2013년 77%에 달했으나 지난해 41%로 떨어졌고 급기야 한 자릿수가 됐다. 전기수요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민간발전협회 관계자는 19일 “내년에는 발전효율이 높은 민간 LNG 발전소도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해안가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원자력발전소들. 정부는 원전의 발전비중을 26%에서 29%로 늘리기로 했고 원전을 현재의 23기에서 34기로 늘릴 계획이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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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소 남는데도 추가 원전 계획

국내 전력공급은 발전단가가 싼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이 기본적인 전력생산(기저발전)을 담당하고, LNG나 신재생에너지가 부족분을 메운다. 그런데 전기가 남아돌면서 LNG 발전 가동률은 2013년 67.1%에서 지난해 53.2%로 1년 새 14%포인트가 급감했다. LNG 발전소 절반이 사실상 가동 중단 상태인 것이다. 김광인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LNG 발전소 가동률은 2022년 17%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올해부터 LNG 발전소들은 대부분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3년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951만㎾를 공급할 신규 발전소 건립을 확정했다. 화력발전소 투자비만 15조6388억원에 이른다. 발전설비 과다건설은 송배전 설비 과잉투자를 부른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전이 송배전 설비 건설에 투자한 돈은 22조5167억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6차 수급계획은 과잉전망에 근거한 과잉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6차 때 확정된 발전소 중 상당수를 짓지 않아도 전기가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내놓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에서 예산정책처는 신고리 3·4호기 등 발전소 17기(1573만㎾) 건설이 늦어져도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했다. ‘신경기~강원~신울진’을 연결하는 230㎞의 신규 송전선로 ‘신강원권 765㎸’가 늦어져도 전력부족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 송전선로는 신한울 3·4호기 등 인근 6기 발전소(680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예산정책처 허가형 사업평가관은 “신강원권 765㎸가 당초 계획보다 2년 늦게 건설되더라도 2025년까지 설비예비율은 20%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7차 계획에서는 이미 수립해둔 원전 건설 계획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위 계획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5년까지 원전설비 비중을 26%에서 29%까지 확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전 설비용량인 2071만㎾보다 2배 많은 4300만㎾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고리 1호기 등을 폐로하지 않는 한 원전은 23기에서 34기로 늘어난다. 우선 지난해 11월 운영승인을 받은 신월성 2호기가 올해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고, 신고리 3·4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4기가 건설 중이다. 또 신고리 5·6·7·8호기와 신한울 3·4호기 등 6기가 추가로 건설된다. 신고리 7·8호기는 강원 삼척이나 경북 영덕 중 한 곳에 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중에서도 반핵 여론이 높은 삼척 대신 영덕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직원이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전력수급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싼 요금이 ‘발전소 난립’ 초래

사실 발전소가 남아도는 상황은 최근의 일이다. 2003년 17%였던 전력설비 예비율은 2012년 4%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전기요금이 싸서 과소비가 이뤄진 탓이다. 2000년 이후 2012년까지 소비자물가는 45% 상승한 반면 전기요금은 3% 오르는 데 그쳤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4년 에너지통계 연보’를 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제조업의 전력사용량 증가율은 69.1%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 증가율(34.0%)의 두 배에 달했다. 전기요금이 싸다보니 석유와 가스 대신 전기를 쓰는 ‘전력화 현상’이 심화됐던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은 6가지나 되지만 원자력이나 발전용 유연탄에는 세금이 거의 부과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은 억제하면서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 전기 과소비를 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