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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원전과 탈핵

후쿠시마서 3년째 생활...몸에 이상한 징후가

 
 
김제남 의원(정의당)은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의 대표의원이며,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일본 의회 내 원전제로회의 초청으로 3월 4일부터 3일간 일본 의회와 후쿠시마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후쿠시마 현장을 확인한, 20년 환경운동가 출신 탈핵 국회의원의 일본 방문기를 3회에 걸쳐 게재하고자 합니다...<기자말>

후쿠시마로 가는 길은 비가 내리고 안개가 깊었다.

방사능비를 맞는 것이 불안했지만 비가 내리면 공간에 떠다니는 방사능 농도는 비에 씻겨 떨어질 것이라는 작은 위안을 가지고 후쿠시마로 갔다.

3년 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던 날도 후쿠시마에 눈과 비가 내렸다. 핵발전소 폭발로 방출된 고농도 방사능물질은 북서쪽으로 부는 바람에 눈, 비에 실려 이다테무라, 미나미소마, 나미에마치 등 마을을 오염시켰다.

후쿠시마현으로 들어와 처음 눈에 들어온 도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40km 이상 떨어진 이다테무라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차창에 흘러내린 빗방울에 맺혀 보이는 빈 집 뿐으로 모든 것이 멈춘 죽음의 도시였다. 제염작업으로 오고가는 차량만이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일본 중의원 아베토모코 의원, 핫토리료이치 전 중의원의 안내로 방문한 곳은 잘 지어진 이다테무라 청사였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방사능물질 제염작업을 하는 몇몇 작업자들만이 일하고 있었다.

청사 앞 마당에 놓인 전자식 방사선계측기는 공간선량 2.5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하고 있다. 도쿄를 출발할 때 우리가 들고 나온 방사선계측기는 0.04마이크로시버트를 알렸으니 이다테무라의 방사선량은 도쿄보다 무려 60배 이상 높다는 것을 기계를 통해서야 실감했다.

 

 이다테무라 청사 앞 방사선계측기, 공간선량 2.5마이크로시버트(μSv)를 나타내고 있다.
ⓒ 김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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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폭발 3년, 돌아오지 못한 주민 15만명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재난 3년이 되었지만, 마을을 떠난 주민은 방사능물질에 자신이 살던 마을을 빼앗기고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강제이주당한 주민은 현재 후쿠시마현 11개 시·군·읍에 8만 5천여 명이다. 자발적으로 이주해 돌아오지 않는 주민을 포함하면 15만 명에 달한다.

사고 초기에 주민은 후쿠시마현으로부터 방사능 물질 확산 예측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 방사능 물질 확산 예측시스템(SPEEDI)이 있었지만, 사고 초기에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은 방사능 물질 확산 방향으로 대피를 하거나 그 방향에 있는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지 못해 방사능피해가 컸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던 날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 피해를 본 지역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 특히 귀농으로 각광을 받아 온 낙농마을 이다테무라의 피해가 컸다.

이다테무라 촌장의 말처럼 '방사능물질을 가져오는 것은 바람인데 일본 당국이 20km 선을 그어 놓은 대피지역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바람은 여지없이 20km를 넘어 눈, 비에 방사능물질을 실어 40km 떨어져 있는 이다테무라를 비롯한 일본 전역을 방사능물질로 오염시켰다. 사고 당시 이다테무라 마을의 방사선 수치는 시간당 수십에서 수백마이크로시버트를 넘나들었다.

핵발전소 폭발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이다테무라 주민들은 경작물을 갈아엎고, 애지중지 키우던 소의 젖을 짜서 구덩이에 파묻고, 도축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이 흩어져 강제피난길에 들었다. 방사능물질이 바람을 타고 직격탄을 날린 이다테무라 주민들은 운이 나빠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주민들의 운명이 이 지경으로 파탄나지 않았을 것이다.

핵발전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모든 것을 핵발전에 빼앗긴 채 매일 매일 방사능의 공포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민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방사능과 싸우는 것이다. 고농도의 방사능이 마을과 가옥을 덮고 땅, 산, 물, 바다 모든 것을 오염시켰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생명을 침해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농도의 방사능물질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이다테무라를 지나 도착한 곳은 후쿠시마 연안을 따라 위치한 미나미소마시였다. 동네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의 작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쿠라이 가쓰노부 미나미소마 시장을 만났다. 사고 당시 4만여 명의 주민을 긴급 대피시키고 자신은 청사를 떠나지 않고 50일간 청사에서 먹고 자면서 정부로부터 제공받지 못하는 정보와 대책을 찾아 뛰며 주민을 지켰다. 지난 2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추진 공약을 내걸고 압도적인 표차로 시장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사쿠라이 가쓰노부 미나미소마 시장과 대담 중인 김제남 의원
ⓒ 김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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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사람에게 흰색 반점... 피폭 감내 하며 기록 남겨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원전 주변지역 교부금' 수령을 거부하며 탈원전 미나미소마 만들기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7만 4천여 명의 주민 중에 현재 5만 2천여 명이 살고 있고, 2만 명이 넘는 주민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주민 다수가 젊은 층이다.

사쿠라이 시장은 "원전과 공존하지 않는 도시만들기,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도시만들기,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자립 도시만들기 등을 부흥의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젊은 인력이 없어서 부흥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젊은이가 돌아오는 도시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했다. "핵발전소 폭발사고로부터 파괴된 미나미소마시를 원전과 공존하지 않는 도시로 복원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이는 세계사적인 차원의 부흥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미나미소마의 책무"라고 말하는 그의 결단과 용기에 깊은 연대감을 느꼈다.

핵발전소 사고 지점에서 14km 떨어진 나미에마치에 있는 희망목장의 주인 요시자와 마사미씨를 만났다. 이곳은 출입금지구역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면서 바람의 영향으로 고농도의 방사능물질이 날아와 피해가 가장 컸다.

사고 전 3천 5백여마리 소를 키웠지만, 사고 이후 대부분의 소들은 마을주민이 피난하면서 살처분되거나 방치되어 굶어 죽었다. 희망목장에만 300여 마리의 소가 주인과 함께 살고 있다. 방사능물질에 의한 피폭을 감내하며, 조사기록을 남기고 그 피해의 산 증인이 되겠다며 목장을 떠나지 않았다. 소들에게 흰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소 주인인 요시자와씨도 팔뚝에 흰색 반점이 생겨났다.

 

 나미에마치에 있는 희망목장의 주인 요시자와 마사미씨
ⓒ 김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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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사고 뒤엔, 이미 모든 게 끝났다"

요시자와씨는 정부에 조사를 의뢰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르겠다'며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시자와씨는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했는데 폭발했다, 안전대피선이다 안전기준치다 하는 동안 방사능물질은 바람을 타고 확산되어 마을과 주민을 덮쳤다"며 진실을 말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아베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정부, 도쿄전력이 말하지 않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집시가 되었다, 차를 타고 전국을 돌며 핵발전소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다닌다"고 했다.

최근 아베정부가 제염작업을 마치면 귀향 조치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제염만 끝나면 귀향 조치한다는 것은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강제 대피한 주민에게 매월 10만 엔을 지급하던 보상 예산을 줄이겠다는 속셈이라고 했다. 산은 제염할 수 없으며 주민이 농업용수로 쓰던 댐의 방사선량이 높은데 이 물로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 농사지을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더욱이 농사지을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 후쿠시마 사고 3년을 맞는 나미에마치의 현실이었다.

그는 "핵발전소 사고가 난 뒤에 무엇을 하려고 하지마라, 이미 그 때는 모든 것이 끝났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며 원전진흥의 길로 역주행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원전확대정책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 주변 지자체는 평소보다 3배의 예산을 투입하며 지역 복구를 하고 있다. 복구작업의 대부분 예산을 제염작업에 투입하며 2017년까지 거주제한구역을 해제하여 주민을 귀환시킨다는 방침이다. 오는 4월 1일부터 피난지시해제준비지역인 다무라시 미야코지 주민의 귀환조치를 내렸지만, 노인들이 귀환을 희망할 뿐 자녀를 둔 부모나 젊은이들은 귀환을 원하지 않는 실정이다.

후쿠시마 1발전소 1~4호기의 폐로를 결정했지만, 1~3호기는 녹아내린 핵연료를 꺼내지 못한 채 방사능물질이 유출되고 있고, 4호기는 사용후핵연료를 이제 꺼내기 시작했지만 위험천만한 상태로 사고는 진행 중이다. 공간방사선선량이 낮아졌다고 주민을 귀환 조치하는 당국의 처사에 주민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마을과 사람의 기능이 파괴되었고, 주민이 기대어 살아갈 땅과 물 그리고 바다가 오염되었는데 과연 주민은 옛 모습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베정부는 지난 2월 원전재가동 방침을 내놓으면서 주민귀환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원전 주변 주민은 도쿄주민을 위해 40여년 이상 희생당하다 급기야 폭발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는데 또다시 원전재가동을 위한 볼모가 되어 방사선 피폭에 내몰리는 것인가?

아베정부는 경제성장 전략 아베노믹스를 위해 원전재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값싼 핵에너지를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2020년 동경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장미빛 성장전략으로 휘청거릴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을 망각하게 하는 우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아베정부는 핵발전 중단으로 화석연료를 구입하는 비용이 3.6조 엔 늘어나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고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발생한 복구비용이 앞으로 100조 엔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사고의 뒷감당은 국민 세금으로 하는 셈이다. 주민은 버려지는 가운데 원전재가동의 이익은 그 이해집단인 이른바 '원자력촌'이 가져가는 낡은 에너지정책을 답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베정부는 아직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에 대해 반성하지 못하고, 핵재앙이 주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주민이 사는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을 찾아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가 '원전주변 지역 지원금'으로 유지해 온 핵발전소의 안전신화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 끝났다.

그리고 핵발전은 천문학적인 사고 복구비용을 지불하며 핵발전은 값싸다는 우상도 무너졌다. 후쿠시마가 준 크나큰 고통과 상처 속에서 주민은 핵발전의 거짓 우상을 깨고 새봄을 향해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돌아오는 빗길 속에 멀어져 가는 출입통제구역 희망목장을 보며 주민의 진정한 생의 귀환의 길은 탈원전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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